4. 엇갈리는 밤

 

최종 스코어는 4:0, 대항군 최초의 전원 전사라는 오명을 썼지만 시아키 일행을 비롯한 협력자들의 활약으로 최종적인 승리로 끝이 났다. 디바이스의 결함이라는 문제를 감안하더라도 대항군 최초의 패배라는 불명예를 가까스로 면한 승리였다.

지금부터 할 일이.... 많네에. 프람, 잘 시간이니까 많이 먹지 마. ”

. ”

짙은 어둠이 깔린 늦은 밤이었다. 저녁을 먹고 샤워를 마친 후 작업실로 돌아온 쿠스케는 프람이 책상에 자신과 시아키의 검 디바이스를 가져다 놓은 것을 확인하고는 화면에 뜬 체크리스트를 바라보았다. 전동 드라이버를 들어 디바이스를 분해한 다음 전선 네 가닥을 각각 연결한 후 전원 버튼을 눌러 본체를 스캔했다. 세 개의 모니터를 동시에 들여다보며 쿠스케는 메일을 통해 방금 막 도착한 새 시스템의 패치 파일을 다운로드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는 디바이스의 시스템을 새로 포맷하고, 고장나버린 디바이스의 부분을 고쳐야 한다. 작업을 시작한 김에 시스템 패치의 다운로드도 진행할 참이었다. 모든 작업에는 시간이 필요했기에, 이제 느긋하게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왠지 오늘 밤에도 이곳에서 자게 될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한 쿠스케는 옆에 있는 소형 냉장고에서 캔 맥주를 꺼내 한 캔 땄다. 인간 모습의 프람은 돌아온 프람은 소파에 앉아 TV화면을 틀며 사료가 든 종이 상자에 연신 손을 집어넣었다.

서랍 속에서 이어폰을 꺼내 개인 단말기에 연결하고 한쪽 귀에 꽂은 쿠스케 앞으로 화면이 하나 열렸다. 쿠스케는 흘러내린 안경을 밀어 올리며 화면을 응시했다. 이미 리브가 거주하는 지역 부근에 차를 대 놓은 듯 했다. 운전석에 앉은 시아키 옆에서 리브는 앞좌석에서 안전벨트를 풀고는 팔짱을 끼고 앉아있었다.

- 얘기들 다 끝났어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들을 새라 쿠스케는 염화로 신호를 보냈다.

. 다 끝났어. 오늘 고생 많았어들. 그냥 너도 와서 같이 마시고 여기서 자고 가도 됐을 텐데. 정말 아쉽네.

- 일이 많아서요. 디바이스가 언제 어떤 일이 있어도 쓸 수 있게 하는 게 디바이스 마이스터의 일이거든요.

막 마시자는 것도 아니었는데.... 나도 어차피 내일 오후 늦게 저쪽에서 일을 받기로 했거든. 시에한테는 얘기했는데, 너한테는 얘기 안했나봐? , 며칠 동안 다른 세계에 좀 다녀올 거니까, 우리 아가씨들 한동안 못 보겠네. 그리고 쿠스케, 그거 인사 두 번째다?

- .....

귀여운 녀석들.

리브가 깔깔거렸다.

슬슬 가야겠어. 데려다줘서 고맙다. 많이 피곤할 텐데, 조심해서 가. 도착하면 문자 한통 보내주고.

안녕히 가세요, 리브 님.

그렇게 리브는 웃으며 차에서 내렸다. 시아키는 리브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잠깐 이쪽을 바라보며 손을 들던 리브는 골목을 지나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하아...
리브의 흔적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시아키는 운전대에 기대어 엎드렸다. 몰려오는 피로감에 지친 듯 눈을 비볐다.

이럴 줄 알았으면 리브 님이 내 앞에서 총 들이밀었을 때 그냥 그 자리에서 승부를 내버릴 걸 그랬나봐.

- 무슨 일 있었어?

....혼났어. 오는 내내 계속 설교 들었어.

툴툴거린 시아키는 이내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신호를 넣고 조심스레 차로로 진입한 차는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운전 도중의 영상통화는 금지였기 때문에 화면은 곧 꺼졌다.

하긴 먼저 작전을 깬 건 나였으니까. 그것도 그렇고, 너희는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있는데 왜 먼저 가서 그랬냐 하시더라고. 어설픈 변명을 할 바에는 자신의 길을 똑바로 가서 그게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면 되는 거 아니냐 하시는데, 맞는 말이기도 하고 이해 못하는 것도 아냐. 뒷골목 세계가 그랬잖아. 게다가 우리 사정을 잘 알고 계신 리브 님이시고, 우리가 교회로 돌아온 걸 별로 좋게 여기지 않으시기도 했고.... 그래도... 그래도 누구에게든 혼나는 건 별로 유쾌하진 않네.

- 혼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 좋게 생각할까. 혼내는 것도 애정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전에 해리 언니가 그랬잖아.

그 명제는 잘못됐다고 했었잖아. 매번 말하기도 뭐하다고.

- 하하핫. 그랬던가?

바보냐, .

화면 아래쪽에 조그맣게 표시된 지도는 시아키가 네비게이션에 지정한 길과 도착 예정시간까지 남은 시간을 표시해 주었다.

, 쿠스케. 혹시 내일 비 예보 있었어?

- 새벽부터 가랑비가 조금 온다던데. ?

.... 왼쪽 무릎이 좀 시큰거리고 무거워. 한번 다치고 나니까 왠지 비오면 반응하는 게... 꼭 해리 언니 같아.

- 오늘 무리해서 그런가. 수건 좀 데워둘까?

그래주면.... 고맙고. 10분 내로 도착할 테니까.

- 알았어. 천천히 와.

.

이야기하기 부끄러운 듯 시아키의 말소리가 살짝 줄어들었다가 올라갔다. 쿠스케는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쌉싸름한 맛의 수도원산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고는 프람을 향해 손짓을 했다. 금방 이쪽의 신호를 알아챈 프람은 이쪽으로 다가와 쿠스케가 선반에서 꺼내는 수건을 받아들었다. 무엇이 즐거운지 프람은 꼬리를 살랑거리며 수돗가에서 수건을 적셨다.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니지만.... ”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쿠스케는 정비를 위해 분해해놓은 시아키의 디바이스에 이어폰을 꽂았다. 작업대에 걸터앉은 쿠스케는 마음속에서 자신을 부르는 아일렌과 함께 그 안에 들어있는 소리 데이터를 듣기 위해 잠시 귀를 기울였다.

 

... 그렇게 나와서 지내기를 4년이었어요. 밖에 나와서 지내면서 듣고 보고 지낸 그동안의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어요. 저는 더 이상 아버지와 저와 쿠스케를 죽이려고 혈안이 된 당신들을 증오하지도 않고, 적대할 이유도 없어요. 그렇다고 신의 길과 어둠의 영역, 그 경계선상에서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저와 쿠스케의 기분을 알아달라고 무작정 조르지는 않겠어요. 쿠스케는 지금도 독한 진정제를 먹어가며 자기 안에 있는 살인 프로그램을 다스리기 위해 고통스럽게 노력하고 있어요. 저는 그 노력을 옆에서 도와주고 싶어요.....

너도 열심히 노력했잖아.... 무리하다가 무릎까지 나갔었던 주제에. ”

- 시공의 방랑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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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arier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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