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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우닝*마르세우스] 거리의 카레

Karierka 2013. 6. 10. 23:02

일단 말세가 왕위에 오른지 얼마 안되었던 황제란 설정, 그리고 브라우닝은 거리의 탐정. 

망했다...마무리가...내가 생각한 결말이 아니엇어 ㅠㅠ...((_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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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카레

 저녁 식사 때 먹었던 수프가 맛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불사황제가 사는 왕성에서는 각지에서 최고로 치는 식재료가 들어온다. 최고의 재료와 최고의 조미료, 그리고 최고의 조리사들이 심혈을 기울여 맛을 낸 최상의 음식이었다. 오늘 저녁 식사도 여느 때처럼 진수성찬이었고, 모두의 감탄을 자아내는 최고의 맛을 자랑했다. 같이 식사를 했던 귀족이며 장군들 또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구동성으로 음식의 훌륭함부터 시작해 그 모든 것을 황제의 은덕으로 돌렸다.

가증스러운 것들. ’

그 맛있는 음식을 모두와 함께 먹고 있었건만, 시간이 갈수록 마음 한 구석에서 울컥 짜증이 일었다. 웃고 있는 저들의 속내는 제각각이었다. 일부는 머리를 조아리고 아첨하며 어떻게 하면 자신의 마음에 들까 궁리하고, 더러는 웃는 척 하지만 그 송곳니를 감추고 있을 것이다.

숟가락을 뜨고, 포크와 나이프를 움직인다. 그러다 마르세우스는 어느 순간에, 며칠 전에 먹었던 서민의 음식이 머릿속에서 떠올렸다. 카레라고 했던가, 그것은 분명 채소와 고기를 넣고 끓인 물에 한눈에 봐도 샛노랗고 향이 강한 노란색 가루를 넣고 걸쭉하게 끓인 음식이었다. 그에 비하면 지금 먹고 있던 음식은 거친 느낌이 물씬 묻어났던 서민의 그 음식과는 전혀 달랐다. 좋게 말하면 최고급 식재료의 특징을 그대로 살리면서 최고급 풍미를 더했다는 것, 나쁘게 말하면 누구나 한입 먹으면 그대로 매료된다는 맛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한 맛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먹고 있는 음식에 조리장이 이상한 장난을 친 것 같아 기분이 조금 나빠졌다.

방으로 돌아오기 전, 그는 왕성에 있는 작은 서재에 들렀다. 책 한권을 가지고 오기 위함이었다. 옆에 있던 궁무처장이 분부만 내리면 자신이 가져오겠다고 했지만, 마르세우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서재로 들어가 백과사전 한 권을 꺼내왔다.

집무실에 도착한 그는 하인들에게 물러가라 일렀다. 하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한 그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유일한 취미생활이었던 천체관측을 위한, 창문에 걸쳐있는 천체망원경과 부품과 온갖 천문 책과 지도로 어질러진 그의 자그맣고 어두운 방은 집무실을 통과해야 갈 수 있는 그만의 공간이었다. 이윽고 그곳에 도착해 방문을 연 마르세우스는 출입문 옆에 있는 선반을 더듬어 성냥을 집어 들었다. 치익...하는 소리와 함께 성냥이 타오르고, 근처에 있던 램프에 불을 붙였다. 얇은 커튼을 살랑이게 만드는 바람을 업고 등유 냄새가 코끝에 스며들었다. 침대 머리맡에 선반에 램프를 가져다놓은 그는 백과사전을 펼쳤다. 열려있는 창문에 걸쳐 있는 천체망원경이며 벽에 붙어있는 별자리 지도는 말없이 책 속 글자에 열중하는 그를 바라보았다.

 

카레..카레...카레.........카레...

 

족히 1천 페이지는 넘을 것 같은 백과사전에는 온갖 이야기들이 실려 있었지만 그는 전혀 눈길을 주지 않았다. 책과의 약간의 실랑이 끝에 그는 원하는 단어를 찾아냈다. 그리고 찬찬히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카레라 함은 향신료를 원료로 한 카레분 또는 이에 식품이나 식품첨가물 등을 가하여 만든 것을 말한다. 세계에서 널리 보급된 대표적인 혼합향신료이며, 카레라는 말은 국물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이다. 발한 작용으로 인한 상쾌감을 얻기 위해 매운맛의 향신료를 흔히 쓴다. 배합 제조 시에 일정한 기준은 없으며, 제조자가 재량껏 적당히 배합하는데, 원료는 빛깔을 주로 내는 울금사프란진피 등과 매운맛을 내는 후추고추생강겨자, 그리고 향미를 내는 마늘회향정향육계계피너트메그코리앤더(coriander: 미나리과의 고수) 등이다. 식품공전에서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여 정의하고 있....

 

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카레라는 것 자체가 없다고? 그 노란 것이 실제로는 온갖 향신료를 배합한 것이었다고? 배합에는 딱히 절대적인 기준이 없고, 그것도 만드는 사람 마음 대로라고? 그리고 그 향신료는 무슨 종류가 그리도 많아?

마르세우스는 한숨을 푹 쉬었다. 복잡한 설명이 주르륵 나열된 백과사전의 설명에 그야말로 질려버렸다. 마음 한 구석에서 짜증이 일었다. 화풀이하듯 신경질적으로 책을 덮었고, 자리에 누웠다.

 

형태를 종잡을 수 없다는 그 향신료 조합은... 며칠 전에 만났던 그와 같았다.

 

 

*******

 

 

마르세우스는 방황하고 있었다.

자신이 밀어붙이고 있던 법안을 어떻게 해서든 통과시켜야 했지만, 귀족이며 재상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고, 결국 법안은 부결되었다. 자신이 너무 그들을 만만하게 보았다는 사실에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가만히 있다가는 폭발할 것만 같았다. 이대로는 견딜 수 없었던 그는 바람이나 쐬고 오자는 생각에 아무도 몰래 성을 빠져나왔다. 지금쯤 자신이 없어졌다는 사실에 다들 놀라서 찾고 있겠지, 애꿎은 하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당황한 궁무청장이며 재상을 그야말로 엿 먹이는짓이었다. 그들이 허둥대는 꼴을 보고 싶었다. 그러면 조금 기분이 나아질 거라고 기대했었다.

그러나 막상 성을 빠져 나왔을 때 마주친 상황은 그가 기대했던 쾌감과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마치 새장 속에 갇힌 머리 좋은 갈까마귀가 새장에 걸린 빗장을 스스로 풀고 바깥으로 나왔지만 먹이를 잡으러 가야할지, 아니면 높은 곳에 올라가 시내를 내려다보아야 할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는 형국이었다. 그렇다고 그에게 성 밖에 딱히 찾아갈 친구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에게 친구라는 것은 단지 책속에서나 있는 단어였다. 귀족 자제들이 친구라며 다가오는 저들도, 언젠가는 자신의 영달과 욕심을 위해 언제든 뒤통수를 칠 수 있었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는 왕성 밖 시전의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베이지 색 로브를 덧입어 가리고 있었지만, 고급 비단으로 지은 붉은 색 셔츠와 검은색의 조끼, 소매 사이로 비치는 프릴 장식, 반짝이는 청록색의 끈 넥타이의 반짝임까지 가려질 수는 없었다. 심지어 군중 속에 스며들기 위해 고르고 고른 베이지 색 로브조차도 몇 번 입지 않아 깨끗했다. 그에 비하면 시전을 지나는 모든 이들은 어딘가 하나씩 닳아 해진 옷을 입고 있었고 행색은 꾀죄죄했다. 마르세우스는 그들 중 일부가 자신을 흘끔거리며 지나가는 시선을 깨달았다.

.

비켜요, 비켜! 거 길 막지 말고 비켜요! ”

그때, 울룩불룩한 근육질의 사내가 한눈에 보이기도 위태로워 보일 정도의 짐을 들고 그의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감히... ”

자신을 치고 지나간 사람에게 오히려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마르세우스는 화가 나 고개를 획 돌렸다. 하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짐을 든 사내는 자신의 사정을 아랑곳 않고 저편으로 빠르게 가버렸고, 무엇보다도 왕성 밖에 있는 시장 한복판에서 문제를 일으켜 기껏 몰래 나온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어디를 얼마나 걸었을까, 바람에 실린 묘한 냄새가 솔솔 풍겼다. 그 냄새를 따라 정처 없이 걷던 그는 먹자골목표시가 붙어있는, 식당과 노점이 밀집해있는 구역으로 들어섰다. 날이 점차 어두워짐에 따라 상인들은 등불을 밝혔다. 등불 아래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화려한 광경에 마르세우스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볶고 지지고 튀기고 - 마르세우스에 있어서 처음이었다. 그가 보기에 여기는 사람들이 식사를 해결하는 곳인 것 같았다. 온갖 음식 냄새는 이제껏 그가 맡아보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삶은 돼지머리를 내놓고 고기를 썰어 파는 가게, 큰 찜솥에서 나오는 커다란 킹크랩더미, 끈적거리는 무언가를 야채와 섞어 끓는 기름에 부어 굽는 가게, 국수를 삶아 국물에 말아 내놓는 가게 등등. 온갖 가게는 각자의 냄새를 풍겼고, 사람들은 각각의 가게에서 마음에 드는 음식을 샀다. 그리고는 낡은 탁자와 의자가 있는 가운데 광장에서 허겁지겁 끼니를 때웠다. 한참을 나와 걸었던 터라 마르세우스도 배가 고파졌다.

음식을 사는 건 나도 할 수 있어, 그렇게 생각한 마르세우스는 주머니를 뒤적였다. 운이 좋았는지 다행히 금화 한 닢이 나왔다. 하지만 무엇을 먹어야 할지 무척 난감했다. 왕성에서 먹던 고기나 수프에서 맡을 수 없는 이상야릇한 누리끼리한 냄새도 그렇고, 음식의 종류가 너무 많았다. 그게 도리어 마르세우스의 식욕을 달아나게 만들었다.

그러던 마르세우스는 어느 가게 앞에서 멈춰 섰다. 조금 전의 이상한 고기 냄새와는 전혀 달랐다. ‘카레라고 적혀 있는 낡은 가게 앞에서, 콧수염을 기른 채 터번을 쓴 뱃살 많은 아저씨가 국자를 휘휘 저으며 큰 솥에 무언가를 끓이고 있었다. 솥 안에서 끓고 있던 노란색 수프 냄새는 무척 강렬했다. 조금 전까지 주변에서 나던 이상한 냄새를 모조리 잡아내는 것이 아닌가. 더군다나 형언할 수 없는 그 향도 좋았다. 저거다. 저거면 나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말 그대로 카레는 단박에 마르세우스의 발길을 붙잡았던 것이었다.

저기... ”

? ”

저거 하나 주세요. ”

주인장은 솥을 가리키던 마르세우스를 게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신의 전신을 훑어보는 듯 한 그 퉁명스러운 눈빛을 억지로 참고서, 마르세우스는 금화 한 닢을 건넸다. 금화를 받아든 주인장의 눈에 잠시 동요했다. 그러더니 주머니 속에 금화를 넣고는 국자를 집어 들었다.

밥에다 드릴깝쇼, 우동에다 드릴깝쇼? ”

밥이라.... 어느 쪽이 더 낫나요? ”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은 밥에다 드시죠. 보아하니 우리 카레를 못 먹어 본 적 거 같은데, 그렇게 해 드릴깝쇼? ”

그렇게 해 주세요. ”

, . ”

그릇에 갓 지은 밥을 얹고, 국자에서 카레라 부른 수프를 퍼 담아 마르세우스에게 건네주었다.

고맙습니다. ”

숟가락을 받아든 마르세우스는 그대로 자리로 돌아가려 했다.

, 이게 누구야. 아저씨, 이 손님 거스름돈은? ”

? ”

그때, 남색의 트렌치코트에 중절모를 쓰고, 목에는 수프의 색과 비슷한 노란색 목도리를 두르고 있던 남자가 주인장에게 말을 걸었다.

마르세우스가 보기에 나이는 대략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 성을 지키는 근위병들과 대략 비슷했다. 빨간 색의 넥타이가 힐끗 보이는 것으로 보아 속에는 정장을 입고 있는 것 같다. 아래턱 수염은 일부러 놔두는 건지 깎지 못해서 놔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손에는 서류가방을 들고 있었는데, 어딘가에서 일을 마치고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이곳에 있던 모양이었다.

내가 방금 전에 다 봤어. 분명 이 도련님에게서 금화 한 닢 받았잖아. ”

음식 값은 금화 한 닢 아니었나? ”

? ”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영문을 모른 마르세우스는 중절모를 쓴 남자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그러자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어이어이, 이봐. 거기 순해 터져 갖고 세상물정 모르는 시드로 장군님네 도련님. 설마 지금 이 음식 값이 금화 한 닢이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금화 한 닢이면 은화 100개인데, 이 카레 밥 한 끼 값은 고작 은화 7개 값이라고. 도련님이 거스름돈 필요 없다고 말 한 게 아니면 은화 93개는 돌려줘야 하는 거 아냐? 뭐야 이거 아저씨, 혹시 그동안 나한테도 이런 식으로 장사했어요? 혹시 도련님처럼 그동안 내 거스름돈도 떼먹은 거 아냐? ”

뭐라고? ”

남자는 머리를 벅벅 긁었고,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마르세우스는 들고 있던 그릇을 집어던질 기세로 주인장을 획 돌아보았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금화 한 닢에 눈이 멀어 그만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

그제야 사색이 된 주인장은 포장마차 바깥으로 나와 마르세우스 앞에 납작 엎드려 죄를 싹싹 빌었다. 남자는 그런 주인에게 다가가 친근한 척 말을 걸었다.

아저씨, 이런 높으신 분에게 사기 칠 때야 좋지. 그렇지만 여기 도련님은 금화 한 닢 가치도 모를 정도로 굉장히 고귀한 집안에서 자란 자제분인데, 나중에는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게다가 그 집안은 군부라고. 그러니까 은화 93개 돌려받고, 도련님도 이번 한번만 너그럽게 용서해주면 참 좋겠어. 여기 사람들은 여러모로 사정이 많으니까. 괜히 일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좋게좋게 가자고요. 나도 카레 맛있게 끓이는 단골집 잃기는 싫으니까. 안 그래요? ”

겉으로는 말리는 것 같지만, 마르세우스는 남자의 뼈 있는 말에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부족함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포장마차에서 음식을 파는 일개 상인에게 사기당할 뻔 한 것은 둘째치더라도, 자신은 이 나라에서 돌고 있는 화폐의 가치조차 모르는 바보 왕이었다. 그 사실을 저 노란색 목도리를 두른 남자는 멋대로 주인장의 잘못과 맞바꿔 버렸다. 하지만 마르세우스는 거기에 무어라 대꾸할 수 없었다. 그저 들고 있던 카레 접시만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

 

 

뭐야, 안 먹는 거야? 식으면 맛없다고. ”

마르세우스를 구석진 자리에 앉혀놓고, 남자는 음식을 가져왔다. 카레를 밥 위에 부은 것과, 우동 위에 부은 것 두 가지였다.

카레가게의 주인장은 금화 한 닢을 온전히 마르세우스에게 돌려주었고, 음식 값을 받지 않았다. 식어버린 음식을 다시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었다. 나무젓가락을 든 남자는 후루룩거리며 우동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남자가 두입 정도 먹고, 그릇을 들고 카레 국물을 들이켰을 때까지도 마르세우스는 자신 앞에 놓인 숟가락을 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 . 언제까지 삐져 있을 거야. ”

뭔가 형언할 수 없는 분위기를 견딜 수 없던 남자는 젓가락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이러지 말어. 높으신 댁 도련님이라면 그런 건 모를 수도 있지. 신경 쓰지 마. 처음에는 누구나 실수 하는 거니까. 하긴 애당초에 여긴 당신 같은 사람이 오는 곳이 아니니까. 솔직히 말해봐. 당신 여기, 처음이지? ”

“ ...... ”

그러고 보니 통성명을 안했네. 난 브라우닝. 탐정이고. ”

탐정? ”

.... 이런저런 잔심부름을 하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아하하하, 아하하하. ”

남자 - 브라우닝은 어색한 웃음을 터트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마르세우스. 일단 예를 표해야겠지. 고맙다. 그리고 유감스럽지만 시드로 장군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다. ”

내키지는 않았지만, 마르세우스는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아니.... 딱히 인사를 받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어. , 그래도 도련님 덕분에 저녁밥 공짜로 잘 먹게 됐으니까 오히려 내가 감사해야하나. 아하하하하하. ”

그런가.... 결국 넌 날 이용해서 저 주인장에게 사기를 쳤군. 그렇다는 이야기는 내게 친절한 당신도 얼마든지 나한테 사기 칠 수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애당초 너와 나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으니까. ”

에이. 그래도 그런 소리는 말아줘, 도련님. ”

브라우닝은 윙크를 하며 찡긋 웃었다. 반대로 자신에게 호의를 가지고 도와준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자신을 이용한 걸 깨달은 마르세우스는 순간 울컥했다.

그래도 솔직히 위험했어. 아까 봤지? 도련님을 죽여 버리고 싶어 했던 사람이 아까 바글바글했던 거. 금화 한 닢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는 세상물정 모르는 도련님은 여기서 털어먹기 딱 좋은 먹잇감이지. 내가 없었으면 당신, 지금쯤이면 어디 뒷골목 으슥한 곳에 끌려가서는 그 비단옷이며 타이 넥타이까지 죄다 털렸을 걸? , 어떻게 생각하던 그건 도련님 자유. 그래도 일단 배고파서 히스테릭 일으키는 거 아니면 일단 먹고 생각해. 여기 카레, 맛있어. ”

너 같으면 지금 이런 상황에 밥이 넘어가... ”

꼬르륵.

마르세우스는 요동치는 뱃속에 할 말을 잃었다.

“ .... 잘 먹겠습니다. ”

요동치는 뱃속 시계 소리가 제법 컸는지 둘 사이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색한 마음에 브라우닝은 헛기침을 했고, 마르세우스는 고개를 숙인 채 앞에 있던 숟가락을 들었다. 카레와 밥을 같이 한입 푹 떠서 입에 넣었다.

“ .... 매워. ”

걸쭉한 식감에,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냄새였다.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달콤하기도 하고 느끼하기도 하고, 무엇이 섞여 들어갔는지 알 수 없는 거친 향신료 냄새였다. 왕성에서도 후추 같은 향신료를 사용하긴 했지만 이 정도까지 강한 향은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매웠다. 마르세우스는 입을 막았다.

이런, 카레.... 처음이야? ”

브라우닝이 혀를 끌끌 차며, 자신 앞에 놓여있는 물을 마르세우스에게 내밀었다.

초보자에게는 과했나. 그래도 이 매콤한 맛이 이 아저씨 카레의 매력인데. 뭐랄까, 딱히 맛있는 건 아니지만 뭐랄까, 집에서 끓이는 것 같은 그런 맛이거든. ”

집에서 먹는 카레가 이렇다고? 이렇게 매운데? ”

만들기 쉽다던데. 카레 가루만 구하면 나머지는 스튜랑 똑같다고. ”

스튜? ”

“ ..... 정말, 도련님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고기와 야채 끓인 물에 넣는 거야. 거기에 우유를 넣으면 스튜, 카레를 넣으면 카레. , 요리 모르면 어느 쪽이든 만들어먹기 귀찮지만. 그럴 바에는 이런 식으로 차라리 사먹고 말지. ”

호오.... ”

말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건데, 브라우닝은 직접 요리를 하진 않는 듯 했다. 방금 전부터 요리에 관한 것은 누군가에게서 들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왕성의 음식에 길들여져 있는 마르세우스에게 브라우닝의 말마따나 카레가 딱히 맛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숟가락을 놓을 수가 없었다. 단순히 배가 고팠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고 느꼈다. 향신료의 자극적이고도 거친 향이 곱기 그지없는 고급 음식에 길들여져 있던 마르세우스의 미각을 자극했는지도 모른다.

신기하네. 의외로 도련님네 입맛에 맞는 건가. ”

그렇게 마르세우스가 카레를 끼얹은 밥을 거의 다 먹었을 때, 브라우닝은 이미 자신의 카레우동 그릇을 다 비운 상태였다. 브라우닝은 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러고 보니 어디서 듣기로는 끓여놓고 하루 정도 식힌 카레를 따뜻한 밥 위에 부어먹으면 그것도 나름 맛있다고 하더라고. , 여기서 카레 사먹는 사람들은 그런 걸 따질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평생 가도 금화 한 닢 구경하기조차 힘든 여기 사람들은 찬 카레든 더운 카레든 돈만 내면 그냥 먹는 거야. 반찬 없어도 밥이든 국수든 그 위에 부어먹고 나면 뱃속이 무척 든든하니까. 그러면 또 일을 하러 가야지. 그만큼 여기는 열심히 살아가려는 여유 없는 도시 사람들이 모인 곳이야. ”

“ ...... ”

, 그렇다고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 마. 나한테 카레는 딱히 의미는 없고,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일걸. 그딴 거 생각 할 필요도 없이 그냥 단순히 카레가 좋아서 먹는 바보도 있을 거고, 카레 냄새만 맡아도 싫어하는 사람도 많으니까. 근데 그거 알아? 카레는 정말로 독특한 음식이거든. 궁금하면 카레 가루 레시피라도 찾아보던가. 혹시 좋은 조합 있으면 나한테도 알려줘, 도련님. ”

거기까지 대답한 브라우닝은 싱긋 웃고는 담배 연기를 한 모금 빨아냈다.

밥 다 먹었으면..... 갈까. 여긴 금방 어두워지니까. ”

 

 

******

 

 

그 후로 며칠 동안 자신이 외출했다는 사실 조차 까맣게 잊고 지낼 정도로 마르세우스는 일에 치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일단 그날 저녁에 왕성에 무사히 귀환한 마르세우스는 궁무청장과 재상들에게 심한 잔소리를 들어야 했고, 멋대로 외출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야 했다. 다음날부터 또 부지런히 일정을 소화해야 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생각 할 겨를이 없었다.

겨우 이 모든 일정을 끝내고 자신의 방 침대에 누워 백과사전을 뒤적일 때가 되어서야, 마르세우스는 자신을 브라우닝이라 소개했던 거리의 그 남자를 떠올릴 수 있었다.

 

마르세우스는 한 국가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었고, 그는 저 밑 거리에서 탐정이라는 한낱 심부름꾼이었다. 지나가면서 만난 사람이라고 치부해 아무 일 없었다며 뭉개버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브라우닝이 마르세우스에 한번 찾아보라며 던져놓은 카레가루 배합이야기가 조금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와 헤어졌던 곳은 왕성 근처의 어떤 갈림길이었다. 그는 왼쪽, 마르세우스는 오른쪽. 목적지에 다다른 브라우닝은 조심해서 가라는 한마디 말을 남긴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 인파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자신의 일에 끼어드는 것도 제멋대로, 가는 것도 제멋대로인 사내였다. 가게 주인을 그런 식으로 골탕 먹인 것도 그의 저녁식사 한 끼를 위해서였지, 결코 옆에 있던 도련님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마르세우스도 잘 알고 있었다. 절대로 호의일 리가 없었다....호의일 리가 없어.... 정말로 호의가 아니었을까...?

 

그딴 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이 양반아. ’

이럴 줄 알았으면, 이렇게 생각이 날 것 같았으면 용기를 내어 연락처라도 알려달라고 할 걸 그랬다.

자리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던 마르세우스는 그날 먹었던 카레 냄새를 떠올렸다. 그리고는 씁쓸하게 웃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