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작업물/경계인이야기

시공의 방랑자들 (2)

Karierka 2014. 3. 3. 17:36

2. 작전 회의

 

맞아, 어제 얘기한다는 건 어떻게 됐어? ”

동트는 아침에 격납고 주변에서 있었던 작은 소동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자, 시아키는 아일렌이 멋대로 들어가 버려 잠들어버린 쿠스케와 그 옆에 있던 리브를 서둘러 부근에 있는 공방으로 들였다.

유망한 시스터였던 쿠스케와 시아키가 교회를 그만두었다 돌아온 그동안, 그들에게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가짜 신분으로 일반인들 틈에 섞여 평범한 학생과 민간 디바이스 보조기사로 지내기도 하고 흑표범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뒷골목 세계를 전전하기도 했지만, 교회가 요주의 인물로서 계속 쿠스케와 자신을 추적하고 있음을 알게 된 시아키는 교회 고위층의 설득과 회유, 그리고 뜻하지 않은 부상 등으로 위기에 처해있던 자신들의 처지 사이에서 고민한 끝에 결국 이곳으로 되돌아왔다.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시스터는 아닌 민간협력자의 신분으로서 의뢰비과 숙소, 작업실로 쓰는 교회 내 사무동 건물의 한 칸 등을 제공받는 대신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하기 어렵거나 귀찮은 일들을 처리하고 교회 사람들의 의무인 예배당 청소를 똑같이 한다는 조건이었다. 지금은 그 뒷골목 시절의 조금 특별한 손님인 리브가 아침 샌드위치 도시락을 사들고 이들을 찾아온 참이었다.

리브는 교회로부터 일을 받을 경우에는 집합시간까지 남은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이들을 찾기도 했고, 때로는 같이 식사를 하거나 정보를 얻기 위해서 예고 없이 방문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리브는 디바이스 마이스터 자격증을 비롯해 무기를 정비하고 만질 수 있는 믿을만한 사람이 쿠스케밖에 없다는 이유로 정비를 부탁하곤 했다. 하지만 쿠스케가 처음부터 리브의 장비를 덥석 받아 정비했던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가 무기를 수리한 흔적이 남아있는 것을 본 쿠스케는 정비하는 걸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사용자가 자신 외에 다른 사람에게 수리를 맡긴다는 사실을 무척 싫어한다는 것, 그러니까 수리 기사의 자존심에 대해 리브에게 설명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었다. 당시에 리브는 그것을 정비기사의 알량한 고집이라 툴툴거렸지만 이 일이 의외로 크게 번져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었다. 그 문제들이 해결된 지금은 리브의 부탁이 있을 때마다 그의 무기를 봐주고 있다.

기각됐어요. 가서 이의제기는 했는데, 지금 당장 고치는 건 불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나름 저쪽에서도 문제를 알고 있었던 것 같지만요. 게다가 오늘이 아니면 훈련장 잡기가 정말 어렵대서 일단 예정대로 진행한대요. 아직까지 새 시스템이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다고 하니까 일단은 그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주교님께서 그러셨어요. ”

어쩔 수 없죠 뭐... 이거 냄새 좀 날 거예요. ”

리브가 사온 도시락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진한 커피를 마시며, 쿠스케는 리브가 건네준 검을 이리저리 만져보았다. 생각보다 좋은 상태에 만족한 쿠스케는 옆에 놓여있던 헝겊으로 리브의 검을 깨끗하게 닦아 마무리하고는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곧이어 옆에 놓아두었던 총을 집어 마력탄을 뺐다. 방아쇠를 당겨 소리를 들은 쿠스케는 총신과 손잡이를 분리하고, 안에 들어있는 기름때 묻은 스프링을 순서대로 꺼내 작업대 위에 늘어놓았다. 시아키가 리브의 질문에 대답할 동안 분해가 다 끝난 부품을 육안으로 확인한 쿠스케는 약간 휘어져있던 내부 스프링을 펜치와 쇠막대를 사용해 원래대로 구부린 다음 선반에 있는 여러 개의 스프레이 중 하나를 더듬어 집었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미묘한 냄새가 리브의 코에 스며들었다.

주교 양반이 그랬다면야 뭐... 별 문제 없지 않을까? 그럼 재작성 얘기는 뭐야? 디바이스는 잘 모르지만, 보통 큰일이 아닌 것 같은데. ”

허공을 향해 검을 휘둘러 본 리브가 검을 집어넣었다.

새 시스템이 들어오면 보통은 그걸 패치 형태로 디바이스에 있는 메인 프로그램에 덮어씌우는데, 그쪽 메인프로그램하고 개개인의 디바이스 설정 파트는 사실 상관없는 영역이에요. , 예를 들면... 시에의 검 디바이스 있죠? 디바이스에 있는 마법 시스템 연산을 A영역이라고 하고, 시에가 자기 취향에 맞게 세팅해놓은 부분을 B영역이라 하면 디바이스는 사용자의 마법 주문 연산이 들어옴과 동시에 이 A영역과 B영역이 각자의 역할을 하면서 연계, 마법이 작동하도록 되어있어요. 이번에 들어온 새 시스템 패치는 A영역에서 움직이는 식을 이전보다 단순화해 디바이스 반응속도가 기존대비 약 15%정도 빨라졌어요. ”

으음... 무슨 얘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 말대로라면 더 좋은 거 아냐? 반응속도가 빨라진다며? ”

문제는 연산 속도가 빨라지면 그만큼 시스템에 과부하가 더 빨리 걸린다는 거예요. 쉽게 말하면 지치는 거죠. 새 시스템에는 그 시스템 연산의 과부하를 처리해줄 장치가 턱없이 부족했어요. 인텔리전스 디바이스가 아닌 이상 시에 같은 기사급 마도사들은 간단한 마법 같은 건 영창 없이 쓰기 위해 B파트에 미리 입력해놓고 쓰는 식이 많아요. 마법 초기입문자면 그런 것도 별로 없고, 이 시스템이 반응속도가 빨라 굉장히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실전을 뛰는 중상급자가 구현하는 그 수많은 연산을 10, 20분 이상 받아내다 보면 결국 시스템 다운으로 디바이스는 기동 불가, 그대로 리타이어에요. ”

저의 경우에는 20분정도 지나니까 디바이스의 반응 속도가 갑자기 느려지더라고요. ”

그렇다면 말이야, 네가 직접 그... 시스템을 직접 고치면 안 돼? ”

쿠스케를 바라보던 리브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러면 저도 좋지만, 불가능해요. 이게 새 시스템의 프로토타입이다 보니까 코드를 임의로 개조할 수 없도록 개발사에서 락을 걸어놨거든요. 그래서 그 시스템 자체는 그대로 놔두고 기존 코드는 백업한 다음 디바이스 포맷, 과부하를 받아낼 수 있는 소스를 새로 작성해서 임시방편으로 때려 넣고, 그 대신 지난 6개월간의 데이터를 토대로 잘 안 쓰는 기술에 대한 보조 연산 3개를 뺐어요. 그렇게 하는 데만 거의 이틀이 걸렸네요. 아일렌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분명 더 걸렸을 거예요. 그나마도 이번 모의전까지만 버틸 수 있는 소스코드가 한계지만요. ”

제 시간에 끝났길래 망정이지, 정말 미친 짓이었어. 다음부터는 디바이스에 직접 접속할거면 미리 얘기하고 해. ”

미안, 미안. 너무 급해서 잊어버렸어. 하하하하. ”

말을 계속하며 쉴 새 없이 손을 놀리던 쿠스케는 빈총을 벽에 겨누어 방아쇠를 당겼다. 방아쇠의 경쾌한 마찰음에 만족해한 쿠스케는 마력탄을 장착하고는 저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연구실용 간이 총기발사대를 덮어놓은 천을 걷었다. 벽에 걸려있는 귀마개 두 개를 각자에게 나누어주고는 자신은 말랑말랑한 소재의 간이 귀마개를 꼈다.

네가 그런 표현까지 할 정도면 정말 장난 아니었겠다. 차라리 그럼 이번 기회에 디바이스는 버리고 나처럼 그냥 무기를 쓰는 건 어때? ”

!

?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

새로 정비한 총기에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쿠스케는 귀마개를 빼고 리브에게 새로 닦은 총기를 건네주었다.

아냐, 아무것도. 하하하하핫. ”

새장 속으로 돌아온 새인가.... 그러고 살기엔 너무 아깝다고. 너희들은. ’

총소리 틈으로 이야기를 받아넘기는 쿠스케를 바라보며, 리브는 아쉬운 듯 속으로 입맛을 다셨다. 전직 시스터 콤비의 사정은 나름 알고 있었지만 못내 아쉬운 듯 했다.

그럼 슬슬 작전 얘기를 해볼까. 조무래기 훈련병 상대는 네가 시켜줘서 좀 해봤어도, 간부급을 상대하는 건 이번이 두 번 째야. ”

왠지 좋아하실 줄 알았어요. ”

너도 그렇잖아? 상대가 강할수록 불타오른다고. 게다가 요즘 제대로 몸을 푼 적도 없고, 간부를 상대할 기회는 많지도 않으니까 나한테는 오히려 좋은 기회지. ”

좋아하시는 건 좋은데, 나중에 제가 리브 님을 잡아야 하는 불상사는 없게 조절 좀 잘 해주세요. ”

알아, 알아. 비살상용 마력탄은 잘 챙겨 왔으니까 걱정은 붙들어 매셔. ”

시아키의 반문에 리브는 손을 내저으며 웃었다. 어느새 커피가 든 머그컵을 든 쿠스케는 리브가 앉아있는 소파 앞에 커다란 지도를 펼쳐놓았다.

오늘의 모의전은 9:9, 저쪽은 한 팀이고 우리 쪽은 사실상 한 팀과 네 명인 셈이에요. 오늘 모의전에 상정된 작전은 월등한 실력을 가진 대항군 선발 정예팀 다섯 명이 장악한 지역을 교회 팀이 교전, 제압하는 시가전 시나리오에요. 제한시간은 60, 우리는 그 팀과 협력자로 얽혀있는 미지의 개인 넷으로 설정이 되어있어요. 어느 쪽이든 전멸하거나, 교회군쪽 대장이 잡히면 그 즉시 모의전 종료, 우리는 대항군이 제압당해도 그대로 도주하면 이기지만 교회팀은 그 협력자까지 제압해야 하죠. 개개인의 전력으로는 저희가 저들보다 한 수 위지만, 아무래도 단체전인 만큼 커뮤니케이션 부분 등에서나 여러모로 불리해요. 만약에 교회팀이 정예팀을 먼저 제압하고 우리를 각개격파한다는 작전으로 나온다면 우리로서는 일대 다수를 상대해야 할 거예요. ”

그렇구나. 시에, 어제 교섭한건 어떻게 됐어? ”

작전지휘 우선권은 대항군 소대장이 갖는 게 규칙이고, 이번 시나리오에 따라 우리는 시작 후 20분까지는 움직일 수 없어요. 대신 디바이스에 결함이 생긴다면 시간에 상관없이 우리 뜻대로 움직여도 좋다고 허락받았어요. 다만... ”

다만? ”

어쩌면 대항군 팀장님은 최대한 빨리 모의전을 끝내려고 서두를 수도 있어요. 여태까지 대항군은 수많은 모의전에서 한 번도 졌던 적이 없었거든요. 새 시스템을 장착한 제 디바이스가 20분쯤에서 느려지고 25분에 다운됐으니까, 저쪽에서도 비슷하게 다운된다고 가정하면 20분 전후에 디바이스가 다운될 확률이 높아요. 빨리 끝난다면 우리 쪽에 제일 좋은 거지만, 어쩌면 교회팀이 이쪽에서 서두르는 걸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오히려 이쪽에서 낭패를 볼 수도 있겠죠. ”

, ...복잡해서. 20분 동안 교회가 버텨주거나 디바이스가 고장이거나 하는 걸 기대해야 한다니 이건 뭐 제대로 싸울 수나 있겠어? 그럴 거면 아까 쿠스케가 만든 그 코드를 전부 대항군에 풀어버리고 우리는 우리대로 난입시키지, 왜 그런 거래.... 그래도 말이야, 왠지 주교 나리 생각대로 움직이는 것 같아 기분은 좀 그래도, 시에 넌 정말 이기고 싶은 모양이구나. 그렇지? ”

물론이죠. ”

나도 마찬가지야. 이런 건 또 우리가 잘 맞지. 안 그래? ”

리브가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할 일을 알려줘. 기회가 되면 큰 사고 한번 쳐 보자고. 아가씨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