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도 날이고, 비도 오고.....
내가 하고싶거나, 혹은 받고싶거나,
(타릭이나 라일 옆에 있으면 오늘 분명히 하고도 남았음)
그도 아니면 달달한 게 쓰고 싶었거나. ('양복우산' 소재도 괜찮았지...)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서 잠깐이지만 끄적인 글.
백허그
“ 비... 계속 오네.... ”
유난히 추운 날씨와 눈이 자주 내리는 이미지로 유명한 베렌 지역의 주도 카일로에, 어제부터 흐릿하던 하늘에서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주도 카일로의 뒤쪽의 만년설로 뒤덮인 산에서 내려온 북풍의 영향 탓인지 베렌의 날씨는 다른 곳에 비해 서늘한 편이었다. 하지만 사람 사는 곳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 듯이, 카일로에도 생명이 꿈틀대는 호밀의 달이 지나기 시작하면 그동안 내렸던 눈이 비로 바뀌어 내린다. 흐드러지는 꽃이 화려한 요즘 시기의 바이튼 풍경과 비교하면, 카일로의 풍경은 화려하지는 않아도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푸른색의 풀과 나무로 이루어져 있었다. 신들의 가호를 흠뻑 머금은 따스한 남쪽에서의 훈풍이 북쪽의 바람과 만나 만든다는 비는 조금은 삭막해 보이는 카일로의 땅과 풀, 그리고 나무를 촉촉하게 적셔주었다.
그래도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는 한기는 있었기에, 나는 여관 문 입구에서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라일에게 안으로 들어올 것을 권했다. 혹여 그가 요즘 같은 환절기에 감기라도 들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쉽사리 말을 들을 것 같지는 않았다. 1년 전만 해도 수도 왕성 제일 높은 곳에서 듣던 같은 빗소리를 그는 지금 그곳에서 한참 떨어진 이곳 변방의 작은 여관 입구에서 듣고 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의 풍경을 느긋하게 담고 있는 저 푸른색의 눈동자는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은 생각이 슬며시 들었다. 그러다 조금 어색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입고 있던 전통복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문을 열어놓아 들어온 바람에 차가워진 손을 잠시 녹였다.
그는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랬던 그가 한숨을 쉬는 소리가 자그맣게 들렸다. 내 귀에 들리지 않도록 신경은 쓴 것 같지만,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낸 것을 보니 빗소리에 녹아든 쓸쓸함이라도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일찍이 나는 그 비슷한 것을 바이튼 유학시절에 느낀 적이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어 발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나무로 만든 전통 슬리퍼가 딸깍딸깍 소리를 냈다.
“ 응? ”
나는 뒤에서 양 팔로 그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았다. 그리고는 그의 왼쪽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갑작스런 나의 행동에 그는 순간 놀란 것 같았다. 잠깐이었지만 그가 움찔하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 아하하하. 왜 그래? ”
생각지도 못한 듯 당황한 듯 그는 실실 웃었다. 지금쯤 저 얄미운 그의 두뇌는 내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계산하고 있을 터였다.
“ 감기 걸려. 거기 그렇게 서 있으면. ”
하지만 그런 계산은 아무래도 좋았다. 뒤에서 끌어안고 기대는 것은 그가 바이튼에 있던 시절, 내게 자주 하던 장난이었다. 그 느낌은 의외로 포근해서 좋다. 처음에는 동성끼리 무슨 장난이냐며 징그러워서 싫어했는데, 나중에는 말해봤자 입만 아플 것 같아 좋을 대로 하라며 놔두었다. 나는 그것을 그대로, 똑같이 했을 뿐이었다. 왠지 이런 날에 찬바람을 맞고 있는 그를 보니 해보고 싶었다. 똑같은 상황이라면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했던 건 덤이었다.
“ 좋네. 이러고 있는 것도. ”
내 손에 자신의 손을 겹치며, 장난기가 발동한 듯 라일이 피식 웃었다.
“ 음.....하나 생각난 게 있어. ”
“ 뭔데? ”
“ 여기서 말이야, 내가... ”
쪽.
“ 두 번은 안속아. ”
내가 무슨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그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 ........아하하하하. 이런, 이런. ”
역으로 허를 찔렀는지, 잠시 멍하게 있던 그는 상황파악이 되자 웃음을 터트렸다.
스킨십을 좋아하는지 자주 장난을 걸었던 그와 비교한다면 나의 스킨십 능력은 거의 바닥 수준이다.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나아졌다지만, 내가 봐도 난 확실히 남과 접촉하는 것을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조금은 내가 앞서나가고 싶어서 먼저 장난을 걸어도, 내 서투름을 아랑곳 않는 그는 그 새를 참지 못하고 나를 앞질러버린다. 하지만 알아주었으면 한다. 가끔은 나도 먼저 안고 싶고, 키스를 하고 싶을 때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렇게 전하면 혹여나 그가 지금 느끼고 있을 쓸쓸함이 조금은 사라질까, 그의 셔츠의 뒤쪽 깃을 살짝 젖힌 다음 목 언저리에 키스를 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좋아해.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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