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중에 단 한번 찾아오는 날, 그날 따라 조금은 피곤했던 하루의 일과를 마친 티샤는 터벅터벅 걸어내려와 어두컴컴한 부엌의 전등 스위치를 누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쾌한 소리와 함께 노란 불빛과 형광등이 어우러진 빛은 테이블 두 개와 부엌과 연결된 미니 바로 이루어진 건물 1층을 조심스레 밝히기 시작한다.
클리닉이란 이름이 붙은 그녀의 개인 연구실 겸 진료실 간판이 건물 바깥에 평범한 종이 사이즈의 크기로 걸려있었지만, 건물 바깥에서 봤을 때는 이곳이 병원이라고 생각하기는 조금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명맥 끊긴 낡은 밥집이었지만 사람들이 소소하게 점심밥과 저녁밥을 해결하던 흔적들이었다. 그런 분위기를 마음에 들어한 티샤는 이곳을 고스란히 남겨두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과하지도, 너무 어둡지도 않게 불이 밝아져 오자, 옆에 걸려있던 남색 앞치마를 두른 티샤는 서랍을 열었다. 나무 서랍의 마찰음이 귀를 간지럽히고, 손을 넣어 들어있던 액자를 한 개 꺼냈다. 자신의 손바닥만한 크기의 젊은 여자의 사진, 파란 하늘 아래 싱그러운 풀잎향이 금방이라도 머릿속에 스며들 것만 같은 청량감을 주는 사진이었다. 밀짚모자에 캐릭터 흰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의 사진 속 여자는 웃고 있었다.
‘ 좋아요? ’
티샤는 웃었다.
한껏 우울해져서 펑펑 울 시기는 이미 지났고, 새로운 사랑을 찾을 거라며 맞췄던 커플반지를 바다에 던지며 현실을 받아들였지만, 왠지 모르게 지금도 이 액자를 꺼낼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저려오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것이 첫사랑이었기 때문일까, 아니 첫사랑이라기보다는 일생을 같이 걸어가겠다고 마음먹었던 사람이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아웅.
그런 티샤의 옆에서, 호랑이 인형 모양의 인텔리전스 디바이스 ‘카리에르카’가 울음소리를 냈다.
약간의 음울함 내지 우울함을 깨는 아기호랑이의 귀여운 포효소리는 잠깐 생각에 잠겨있던 티샤를 깨웠다. 그제야 현실로 돌아온 티샤는 잠깐 화면을 띄워 시계를 바라보았다. 저녁 6시27분, 곧 약속된 저녁 7시가 되면 사진 속 이 사람을 추억하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올 것이다. 왼손에는 카리에르카를 안아들고 오른손으로는 액자를 들어 이 부엌에서 제일 넓은 테이블 위에 둘을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냉장고에 차게 놔둔 술을 가지러 부엌 옆 다용도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율 모드로 설정되어 잠시 주변을 맴돌던 카리에르카는 킁킁거리며 액자냄새를 맡더니 이내 몸을 둥글게 말고 자리에 앉아 자세를 잡았다.
딩동.
예정보다 약 30분 정도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손님들이 도착한 모양이었다. 들어오라는 티샤의 목소리에 맞추어 카리에르카는 도어락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전자화면이 사라지자 미닫이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소리가 났다.
“ 카르야~~ ”
자신을 만나러 온 건지, 자신이 만든 디바이스를 귀여워하러 온 건지 모를 젊은 처자가 실내로 뛰어 들어와 식탁에 있던 호랑이 디바이스를 쓰다듬으며 인사했다. 근처 여학교의 이름이 새겨진 검은색 트레이닝복, 도구를 넣어두는 운동선수용 가방, 질끈 묶은 머리에 짙은 뿔테 안경을 쓴 오랜 친구 리스가 오늘 이 자리의 첫 손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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