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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안에 설탕가루를 흘리면 십중팔구 야단맞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바스락거리는 종이봉투 안에 손을 집어넣어 도너츠를 꺼내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조금은 퍽퍽한 설탕분말과, 그 안에서 배어나오는 조금은 상큼한 딸기잼 향이 미각을 자극한다. 하지만 이내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 젠장.... ’
벤퍼스 대령님은 차 안에서 기다려야 할 일이 많은 직업 특성상 간식을 사는 일이 잦은 편이었다. 본인이 특별히 자기 취향을 밝힌 적은 없고 직업 특성의 핑계를 댄다지만, 술을 많이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지 않는 대신에 달달한 간식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아까 전에 샀던 도넛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딸기잼 맛 도넛을 포함해 내가 좋아하는 것도 몇 개 샀는데... 뭐, 그렇다. 봉투 내용물을 확인 안하고 멋대로 손을 넣어 집어든 게 잘못이겠지 싶었다. 이곳의 딸기는 시다. 하다못해 딸기잼도 신맛이 강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어째 오늘은 일이 안 풀리는 날인가 보다.
운전석 핸들에 기대어 대령님이 들어간 집을 바라본 지도 1시여가 흘렀다. 가사가 없는 조용한 음악을 최대한 소리를 낮춰 틀어놓고 도넛을 오물거렸다. 그러면서도 집 안팎으로 특별한 움직임이 있나 눈을 떼는 것을 잊지 않는다. 며칠 전에도 그런 식으로 잠복근무를 수행했었다. 지금의 일을 그때 배웠던 일의 복습이라고 생각하면 시간은 조금 더 빨리 갈 것 같다.
1년에 한번, 대령님은 연가를 냈다. 인수인계 받을 때부터, 그 날만큼은 휴가를 쓰면 거의 받아줄 거라고 전임자는 내게 말했었다. 무슨 일 있느냐고 물으니, 전임자가 대답했다. 그날은 가족들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조카의 기일이란 대답이 들려왔을 때, 괜히 물어봤다며 내심 후회했었다. 그렇게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당일 휴가 쓰는 것도 잊어버린 나는 대령님의 연가 당일, 이도저도 못한 채 대령님을 졸졸 따라다니다 이곳에 이르렀다. 대령님의 건강 관련으로 며칠 전에 방문한 이곳은 티샤 크로프라우젠 박사님의 연구실 겸 자택이 있는 곳이었고, 그 조카의 기일을 추모하기 위해 네 사람이 이곳에 모인다. 벤퍼스 대령님과 딸 부부인 리스 언니 내외, 그리고 벤퍼스 대령님의 주치의의자 리스 언니와 친구인 티샤 크로프라우젠 박사님까지였다.
“ 같이 가지? 오랜만에 리스도 좀 보고. ”
부하가 혼자 차 안에 있겠다는 게 신경이 쓰였는지, 대령님은 내게 같이 가기를 권했다.
“ 괜찮습니다. ”
“ 저번 그 일 때문인 거야? ”
“ .... ”
“ 선생도 딱히 널 탓하진 않았어. 오히려 자기가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그랬으니까. ”
“ ..... ”
무슨 대답을 더 해야 할까 살짝 고민되었다. 그냥 눈 딱 감고, 참석을 권하는 상사 면전에 대고 내가 가기 싫은 이유 세 가지를 내버릴까 싶었다. 첫 번째,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기일 추모 자리에 외부인인 제가 참석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 두 번째, 리스 언니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달려듭니다. 너무 강아지같아요. 세 번째, 티샤 선생님도 그날 좀 많이 놀라신 것 같은데 아직 사과드릴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 라고.
“ 언니들에게 혹시 전할 말 있나? ”
그런 내 마음이 전해졌는지, 조금 낙담한 채로 대령님은 결국 한숨을 푹 쉬었다. 어찌되었던 일단 약속시간에 늦으면 안 될 것 같으니, 그는 가지고 온 술과 함께 일단 차에서 내렸다.
“ 말씀해 주신대로 했더니 손목 많이 좋아졌다고.. 감사하다고만 전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