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거리감을 훅 치고 들어오는 박사의 기습 아닌 기습에 한숨이 나왔다.
“ 날 봐. ”
내 옆자리에 앉은 박사 - 언니는 무엇이 그리 기분이 좋았는지 생글생글 웃었다. 전혀 술을 마시지 않은 사람 같아 보였다. 혹시 내가 언니가 마셔야 할 술까지 같이 마셔버려서 언니는 멀쩡하고 나는 죽을 맛인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의구심이 든다.
“ 이게 지금 누구 때문인데요. ”
“ 저기 저 선배님. ”
“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
언니의 조금은 무책임한 대답에 다시 한 번 할 말을 잃었다.
“ 저는 지금도 괜찮거든요. 어...어제 일은 그래, 사고였어요. 그래놓고 일어나보니 세상 불편한 사람이 눈앞에서 날 바보취급하고 놀려 먹는걸 바라보는 기분이 아시기나 해요? ”
이쯤이면 저 언니도 웃음을 거두고 정색하겠지 싶은 속내까지 꾹꾹 눌러담아 쏟아낸 가시돋힌 말이었다.
“ 잔뜩 뻣뻣해 있다가 긴장 풀려서 다 쏟아놓고는 다시 주워 담으려고 하니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너무 솔직해서 귀여웠어. 실수 좀 했다고 스스로에게 그렇게 화를 내면 결국 자기만 손해지. 실수 좀 하면 어때? 널 좋아하는 사람들이 너그럽게 봐줄 건데. 조금만 어깨 힘 빼. 너무 그렇게 새침하게 날 세우면 친구 못 사귀잖아. 안그래, 이비 맥그레이프 씨? ”
이때의 대화는 내가 훗날 언니에게 잔뜩 날을 세웠던 오래 전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후에 언니랑 무슨 대화를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도깨비에게 홀린 것마냥 휩쓸려 과음하고, 그걸 못 참아 언니에게 날을 세웠던 난장판의 기억으로 점철된 그 선배의 기일은 썩 유쾌한 기억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불합리함과 두서없음, 최악으로 시작되었던 언니와의 그 일은 앞으로 같이 걷게 될 나날의 시작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