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거리감을 훅 치고 들어오는 박사의 기습 아닌 기습에 한숨이 나왔다.

날 봐. ”

내 옆자리에 앉은 박사 - 언니는 무엇이 그리 기분이 좋았는지 생글생글 웃었다. 전혀 술을 마시지 않은 사람 같아 보였다. 혹시 내가 언니가 마셔야 할 술까지 같이 마셔버려서 언니는 멀쩡하고 나는 죽을 맛인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의구심이 든다.

이게 지금 누구 때문인데요. ”

저기 저 선배님. ”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

언니의 조금은 무책임한 대답에 다시 한 번 할 말을 잃었다.

저는 지금도 괜찮거든요. ...어제 일은 그래, 사고였어요. 그래놓고 일어나보니 세상 불편한 사람이 눈앞에서 날 바보취급하고 놀려 먹는걸 바라보는 기분이 아시기나 해요? ”

이쯤이면 저 언니도 웃음을 거두고 정색하겠지 싶은 속내까지 꾹꾹 눌러담아 쏟아낸 가시돋힌 말이었다.

잔뜩 뻣뻣해 있다가 긴장 풀려서 다 쏟아놓고는 다시 주워 담으려고 하니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너무 솔직해서 귀여웠어. 실수 좀 했다고 스스로에게 그렇게 화를 내면 결국 자기만 손해지. 실수 좀 하면 어때? 널 좋아하는 사람들이 너그럽게 봐줄 건데. 조금만 어깨 힘 빼. 너무 그렇게 새침하게 날 세우면 친구 못 사귀잖아. 안그래, 이비 맥그레이프 씨? ”

이때의 대화는 내가 훗날 언니에게 잔뜩 날을 세웠던 오래 전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후에 언니랑 무슨 대화를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도깨비에게 홀린 것마냥 휩쓸려 과음하고, 그걸 못 참아 언니에게 날을 세웠던 난장판의 기억으로 점철된 그 선배의 기일은 썩 유쾌한 기억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불합리함과 두서없음, 최악으로 시작되었던 언니와의 그 일은 앞으로 같이 걷게 될 나날의 시작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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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었...지요. ”

그야말로 창피했다. 모르는 사람의 기일 자리에 와서 멋모르고 넙죽넙죽 받아먹다 사람들 앞에서 못 볼 꼴을 보여주고 쓰러져 남의 집에서 깼다. 술을 마시면서 일어날 가장 안 좋은 상황 어딘가에 있음을 금방 깨달았다.

진정해. 긴장이 풀리면 그럴 수도 있어. ”

“ .....대령님은요? 집에 가셨어요? ”

12시 넘어서 러츠가 와서 아저씨랑 리스 데려갔어. , 아저씨가 어제 연가 쓰라고 얘기한다는 걸 잊어버리셨대. 너만 괜찮다면 오늘은 안 나와도 된다고 하셨어. ”

그래야할 거 같아요. 도저히 출근할 자신이... 없어요. ”

, 이렇게 된 거, 느긋하게 있다가 밥 먹고 가. ”

박사님은... ”

박사 같은 것 보다는 언니. 어디 가서 박사님 소리 들을 만큼 나이도 아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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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엄청 독하던데요. ”

 따락.

 무어라 반격할 틈도 없이 냉장고를 여는 소리, 그리고 무언가를 따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 사이, 내게 다가온 박사는 음료 한 병을 내게 내밀었다. 인공적인 과일 향과 아주 약간의 약 냄새가 뒤섞인 숙취해소제였다.

감사합니다. ”

뭐야, 우리 말 편하게 하기로 했잖아. ”

? ”

기억 안나? ”

박사의 말에 나는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차에서 내려 박사와 조금 거리를 두어 걷기를 몇 발자국, 문을 열고 안에 있던 대령님과 리스 언니에게 애 데려왔다며 환영을 받던 박사는 그대로 날 집안으로 들였다. 가겠다고는 했지만, 어색함과 망설임이 남아있던 탓에 걸음은 조금 느렸었다. 그런데, 어쩔 줄 몰라 하는 나와는 달리 일행들의 분위기는 정 반대였다. 그 사이에 내기라도 벌어졌었는지 한껏 취기가 달아오른 대령님 부녀는 서로가 이겼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틈을 비집고 끼어든 박사는 손님 두고 뭐하냐고 나무랐고, 자리에 앉혀진 나는 어색하게 술을 받았고, 한 잔 두 잔 거절 못하고 받아 마신 나무 향 가득한 독한 술에 리스 언니를 부르고, 리스에게 언니면 나한테도 언니라며 박사가 끼어들고, 어쩌다보니 마지막엔 미안함에 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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