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나오는 이야기는 배경이 조금 이해가 어려우실수 있습니다.
배경 자체를 모 애니에서 빌려왔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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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오세요. ”
상황판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문전박대는 말할 것도 없고 그대로 시동을 걸어 자리를 이탈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조수석에 놔뒀던 도넛이 들어있는 봉투를 옆으로 치우고 차 문을 열어주자 박사는 기다렸다는 듯 차에 올라탔다.
“ 이제 겨우 만났네요. 그때 이후로 가까운 시일 내에 연구실에 한 번 와줬으면 했었거든요. ”
그러더니 대뜸 내 옆에 두었던 종이봉투를 집어 손을 넣었다. 계획이라도 하고 온 것처럼 내가 미처 반응을 하기 전에 박사의 행동이 조금 더 빨랐다. 내가 무어라 말하려는 찰나에, 박사는 그 자리에서 도넛을 한 입 덥석 물었다.
“ 박사님 지금 뭐하시는... ”
“ 아이스 브레이킹. 근데 이거, 생각보다 맛없네요. 그래도 기왕에 입 댄 거 끝까지 먹어야겠죠? 아니면 대신 먹어줄래요? ”
“ 왜 그러세요, 갑자기? ”
“ 아, 반응했다. ”
무엇이 재미있는지 박사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스 브레이킹 같은 소리, 빈 옆자리를 가리키며 철지난 작업 멘트 같은 것을 날리지 않나, 심지어 허락도 없이 남의 음식물까지 먹다니 예의라고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무례함에 슬쩍 화가 치밀었다.
“ 원래 성격이, 관심 없으면 눈길도 안줘요. 내가 여기 이렇게 있는 건 중위님께 흥미를 여러모로 느껴서예요. ”
“ 그럼 그 흥미가 없다면 어느 누구도 눈에 보이지 않겠네요? ”
자기 분야에 몰두해 시야가 좁은 전형적인 사람, 그 와중에 사회의 관습과 가치관이 조금은 뒤틀린 사람이라는 느낌으로 싸늘하게 와 닿았다.
“ 그럼요. 그래서 이제까지 아저씨를 수행했던 비서들을 딱히 볼 일이 없었어요. 아저씨는 일 특성상 남자 비서들과 자주 일하거든요. 그런데 얼마 전에 아저씨가 솜씨 좋은 여비서를 데려왔다고 하시기에 누군지 궁금했었어요. 그게 잘못되어서 하마터면 경동맥 압박으로 저세상구경 하는 줄 알았지 뭐예요. ”
“ .... 그땐 죄송했었어요. 갑자기 눈... ”
쉿.
말을 이어나가려고 했지만 박사는 이쪽을 바라보며 검지손가락을 입에 댔다. 입 밖으로 내서는 안 되는 일을 언급하려는 듯 그러더니 갑자기 화면을 열었다. 그러더니 무언가 부지런히 적기 시작한다.
- 혹시 블랙박스부터 디바이스가 켜져 있으면 전부 꺼주실 수 있나요? 차량도 예비 전원도 전부 포함해서요.
순간 며칠 전에 서고에서 열람했던 보고서의 내용이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모든 장치의 전원을 내렸다. 박사도 마찬가지로 자신과 연결되는 모든 화면과 기기들을 껐다. 골목길의 컴컴한 어둠이 나와 박사 주변으로 드리우며 젖어들기 시작하고, 가로등의 주황색 불빛만이 아주 약간 차 안으로 스며들어와 간신히 실루엣을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만 비추어주었다.
“ ..... ”
나는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아까 전까지 평범한 사람의 눈을 하고 있었던 박사였다. 허나 지금은 옅은 노란색 은박 내지는 홀로그램을 씌워놓은 듯 눈동자가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날 노리는 위험함으로 인식해 며칠 전에 박사의 목을 조르게 만들었던 그 원인이었다. 저렇게 밝은 색이면, 언뜻 봤을 때 눈동자가 아예 없는 사람처럼 보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 좀 무섭죠? ”
박사의 시선이 내 왼쪽 손목으로 향했다.
“ 이 능력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사실 잘 몰라요. 확실한건 제가 이런 걸 갖고 태어났다는 거예요. 무언가를 투시하는 능력이라, 중요한 수술 같은 거 있을 때 종종 써먹었어요. 얘기 들어보니까 이전에도 이런 일이 몇 번 있었는지, 관리국에서는 ‘미스 키퍼슨’이란 이름으로 오래 전부터 날 주시하고 있었어요. 참고로 내 선대의 사람은 남자였는지 ‘미스터 키퍼슨’이었고요. 뭐, 까놓고 말해 사람들은 이런 이상 현상이 생기는지 어떤지 관심도 없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중위님이 오해하는 것도 당연한 거예요. 평소 생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상 현상은 어쩔 때는 무척 두렵고 무섭잖아요? ”